부상으로 인해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든 러너, 새 신발을 구매하며 애써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러너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타라우마라 : 달리는 사람들.
책의 시작은 세계적인 언더그라운드 울트라러너 선수들인 타라우마라족에 대해 소개한다. 멕시코의 무법지대인 시에라 마드레 산맥 협곡에 깊은 곳에 숨어 사는 타라우마라족은 얇은 고무 밑창으로 만든 샌들을 신고 달린다. 그냥 거의 맨발에 가까운 것이다. 그에 반해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염과 족저근막염 등 온갖 달리기 부상에 시달리는 저자는 온갖 비싼 신발과 장비를 시도해 봤지만 효과가 없다. 그저 ‘달리면 안 된다’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우연히 잡지에서 샌들을 신고 달리는 타라우마라 족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직접 이들을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만난 인물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울트라 러닝 경주가 펼쳐지기까지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타라우마라인들이 사냥을 하는 방식은 문명이 시작되고 무기가 만들어지기 전의 사냥 방식과 일치한다. 그들은 사슴의 발굽이 너덜너덜 해지고 지쳐서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쫓아간다. 절대 (그들의 기준에서) 너무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들이 기본적으로 달리는 거리가 최소 마라톤 코스는 그냥 넘긴다는 것. 심지어 맨발에 가까운 얇은 고무바닥을 끈으로 엮은 샌들을 신고 달린다는 이야기에, 나는 책의 중반부까지 무슨 픽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과학자들의 논리 정연한 이야기와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에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사실에 기반한 ‘에세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당시 이 책이 소개될 즈음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기사에서도 소개되었다. (기사보기) 달리도록 태어난 사람들, 타라우마라족을 아시나요
다시는 새 운동화를 사지 않기로 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포함한 아마추어 마라토너, 그리고 모든 전문가가 ‘꼭 준비하라’고 강조하는 ‘장비’가 하나 있다면 바로 ‘러닝화’일 것이다. 물론 당연히 달리기를 할 땐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다는 것쯤은 다들 생각하겠지만 달리기에서 만큼은 ‘러닝화’를 추천한다. 물론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비싼 걸 살 필요는 없다’는 말도 꼭 덧붙여 줄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born to run,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의 저자 크리토퍼 맥두걸은 그의 저서에서 운동화가 어떻게 인간의 발을 ‘퇴화’시켰는지 각종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나이키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결코 모르지 않는다고 전한다. 딱딱한 바닥을 디딜 때 우리의 발은 더 조심스럽게 바닥을 딛고, 동시에 그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발의 근육들과 아치 구조는 더 견고해진다.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는 인체의 진리는 당연히 발에도 적용된다. 스쿼트를 할 때 발의 안정성을 위해 바닥이 딱딱한 신발을 신으라고 한다. 발바닥이 바닥을 견고하게 지지할 때 우리는 하체를 지나 상체까지 안정적으로 힘을 전달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신체가 그렇듯이, 인체가 성장하면서 발 또한 딱딱한 바닥을 딛는 경험이 쌓이고 점차 강해진다. 이 사실을 왜 달리기엔 적용하지 않았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운동이라곤 단 1분도 하지 않았던 고등학생 시절, 급식소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줄을 서기가 싫어서) 점심, 저녁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쏜살같이 급식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난 늘 순위권에 들었다.) 그 때 나의 신발은? 당연히 슬리퍼였고 심지어 교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물론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 달리기였지만, 3년 동안 꾸준하게(?) 달린 것 치고는 단 한 번도 발목이나 무릎이 아픈 적은 없었다. 심지어 계단도 두 칸씩 뛰어 내려갔다. 물론 굉장히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확실한 건 아무리 젊어도 나는 그저 고질적인 운동 부족에 약골 체력인 대한민국의 입시생일 뿐이었다. 아마 순위권에 들진 못했어도 3년 동안 (중학교까지 합치면 6년 동안) 급식소에 달려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다. 내 기억에 적어도 학교에서 급식실에 나만 달려가진 않았다.
Born to Run의 ‘나이키의 불편한 진실’편을 읽다 보면, 운동화가 발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연구에서도 밝혀진 것 같다.
1986년 나이키 스포츠 연구소장 E.C. 프레더릭은 미국 생체역학 학회 회의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중략)… “부드러운 신발과 딱딱한 신발을 비교 실험했을 때 충격의 세기에 아무런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즉, 부드러운 신발을 신는다고 충격 흡수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1988년 오리건 연구자들이 ‘정형외과 및 스포츠 물리치료 저널’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운동화가 낡고 쿠션이 딱딱해질수록 주자들의 발은 안정되었다”라고 한다. 이건 정말이지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그리고 수많은 런린이와 마라토너들이 믿고 있던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당장 맨발로 달릴 생각은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30년 인생을 신발을 신고 살아 약해진 발을 가지고 바로 맨발 달리기를 하는 것은 골절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나이키를 비롯한 각종 러닝화의 세일 소식에 지갑을 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러닝에 있어 동기부여를 받기 위해 새 신발을 살 필요도 없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의 달리기가 왜 행복했는지를 알게 되고, 러닝크루와 마라톤을 향한 애정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인간은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순수해진다.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이 책의 제목, ‘Born to Run :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구가 달리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 위한 감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가진 ‘Fact,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의 중심에 있는 ‘타라우마라족에 관한 이야기’가 자꾸 픽션처럼 느껴진 것은 그들이 달린다는 거리의 스케일 때문이었다. 나름 러닝에 ‘미쳐있다’는 사람들이 모인 러닝크루 사람들도 30km가 넘는 장거리 달리기는 ‘지루함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들은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일상적으로 달린다. 부상은 발이 강해져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오래 달리게 만드는가?
웰컴 투 동막골을 제작한 박광현 영화감독은 한 TV인터뷰에서 아역배우들과 촬영할 때 생긴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주인공인 아이가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촬영할 때 난관에 봉착했다. 주인공 어린이는 두려운 표정으로 쫓기고 무서운 친구들 아이들은 무서운 표정으로 쫓아와야 했는데, 아이들은 달리기 시작하면 본능적으로 웃는다.’는 것이었다. “연기를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었는데, 뇌에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는 달리기의 기쁨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그 ‘즐거운’ 느낌을 알고 있다. 달리기를 할 때 느껴지는 좋은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다이어트나 목표로 하는 기록, 브랜드의 스폰과 같은 어떤 뚜렷한 목적 없이, 그냥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다. 코치로서 50년 동안 운동생리학을 연구한 조 비질은 달리기를 할 때 느끼는 기쁨에 대해 ‘순수한 기쁨’이라고 표현한다. 이건 마치 매력적인 이성을 볼 때 본능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심지어 ‘건강한’ 몸의 반응이다. 아이들은 달릴 때 그 ‘순수한 기쁨’을 그냥 그대로 느꼈고 그게 얼굴에 저절로 드러난 게 아닐까? 타라우마라족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정직함과 평화로움, 행복을 오랜 세월 유지한 비결은 바로 달리기가 주는 순수한 기쁨을 계속 이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조상은 오랜 시간 달릴 수 있도록 진화했고, 오래 달리기는 인간이 가진 유일한 생존 수단이자 무기가 되었다. 달리는 인간들만이 살아 남았고, 천부적인 오래 달리기 재능이 박힌 인간의 DNA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개들도 모두 각자 성격과 기질이 다양하지만 개를 개로 만드는 DNA 자체는 모두 동일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두 발과 두 다리가 있는 한 달릴 수 없도록 태어난 인간은 없다.
인간에게 무엇이 있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 모여서 미친듯이 달리는 것 외에 아무런 수단이 없었다. 인간은 모든 영장류에서 가장 협동적인 존재였으며 공동체 생활을 했다. 송곳니로 무장한 세상에서 인간의 유일한 방어 수단은 결속이었다.
인간은 사슴과 영양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는 장거리 달리기 사냥 덕분에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뇌가 급속도로 발달했다. 뇌는 인간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지구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발달시켰고, 항상 에너지를 저장하고 꼭 필요할 때만 엔진을 가동시켰다. 그렇게 인류는 이 행성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대 인류는 1년 365일 24시간 엔진을 켤 필요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엔진은 꺼지고 인간의 몸은 유래 없는 에너지 과잉을 경험하고 있다. 극소수의 특권층만의 병이던 심장병, 당뇨병, 우울증, 고혈압 같은 병이 이제는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이러한 유행병을 피해 갈 가장 확실한 방법은 꺼진 엔진을 다시 켜는 것이다.
42km 레이스를 앞두고 이 책을 읽은건 운명일까
6월 12일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리는 운탄고도 42km 레이스는 내 인생 최장거리 레이스다. 무릎 상태가 아주 좋진 않아서 레이스를 앞두고 걱정이 컸지만, Born to Run,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러닝크루를 운영하는 방식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나는 지난 해부터 러닝크루의 리더로서, 크루원들이 꾸준하게 달리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했다. 이벤트를 열고, 목표를 만들고, 경쟁을 시키고, 상품을 걸었다. 이런 것들이 러닝을 더 재미 있게 하고 멈춘 러닝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었지만, 크루원들이 가장 많은 거리를 오래 달린 경우는 항상 ‘함께’ 달렸을 때였다.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인해 만남에 제한이 많을 때에도 인원을 나눠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출발해 달렸고, 주로에서 마주치는 것 만으로도 기뻐했다. 달리기는 동기부여가 필요 없다. 그냥 같이 달리면 된다. 러닝이 주는 기쁨을 잊지 않도록 달릴 기회를 꾸준하게 제공하는 것. 그게 바로 러닝크루를 이끄는 사람들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