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에 '달리기'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 처음 나갔던 마라톤도 당시 만나던 사람이 원해서 나간 것이었고, 너무 무리한 탓에 2주 이상 무릎 통증을 안고 가서 그다지 좋은 기억도 아니었다. 그런데 서른이 된 지금, 나는 올 가을 춘천마라톤 풀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 남성 불문하고, 모든 운동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남녀 불문하고 달리기를 하면 심폐기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 수치가 감소하며, 피로회복 능력이 향상되고, 지방을 에너지로 태우는 능력(=유산소 능력)도 좋아진다. 달리기를 하면 이런 장점들이 있지만, 오랜 기간 달리기를 하다 보니 여자로서 느끼는 달리기의 특별한 장점들이 있다.
여성이 달리기를 하면 좋은 점
1. 불안정한 호르몬에도 흔들리지 않는 몸과 마음
꾸준한 달리기는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월경전 증후군, 생리 중의 불안과 우울감을 완화해준다. 이는 가임기를 짧게 30년으로만 가정하고 위의 기간이 약 일주일이라고 가정해도 무려 7년이란 시간을 한결 나은 컨디션으로 보낸다는 얘기다. 가임기 여성을 매 달 괴롭히는 이 호르몬이란 물질은 성욕, 식욕과 같은 원초적 욕구부터 해서 사랑, 모성과 같은 고차원적 감정들을 느끼는데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인간은 어느 정도는 호르몬의 노예가 맞다. 물론 사람마다 그 욕구나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호르몬이 안정적인 상황과 불안정한 상황은 상당히 다른 결과를 만든다. 호르몬이 불안정하면 마치 사춘기 때처럼 몸과 마음의 급격한 변화를 겪기 쉽다.
그런데 여성들은 이런 변화를 가임기인 약 40년 동안 매 달 한 번씩 경험하며, 임신과 출산, 폐경을 겪을 때는 더 큰 변화를 겪는다. 여자들의 불만을 '예민보스'로 받아들이는 건 잘못된 거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예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 이러한 호르몬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탈과 체력을 만들 수 있다. 1992년 듀크대학의 제임스 블루멘탈 박사의 연구결과, 이러한 호르몬으로 인한 증상을 운동이 완화시켜 줄 수 있다고 한다. 연구에서는 특히 근력운동보다 달리기를 한 여성에게서 더 좋은 변화가 많이 나타났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달리기를 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나고, 무엇보다 GABA라는 아미노산 생성이 활성화되는데, 이는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을 억제해 주어서 수면 질 개선 영양제로도 쓰인다.
여성이 달리기를 하면 좋은점
2. 얇고 슬림하지만 동시에 강한 체력
꾸준하게 달리기를 하면 에너지 소비 능력이 향상되며 특히 지방을 에너지로 태우는 능력이 좋아져 체지방량을 조절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게다가 달리기로 발달하는 근육은 '지근' 섬유로 사이즈가 커지는 섬유가 아니다. 물론, 미의 기준에 대해서는 정말로 슬림한 몸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가 슬림한 몸인 사람도 존재하고, 나 또한 과거 (너무 많이) 슬림하던 시절 입던 옷들을 입지 못하는 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근육량을 늘리려면 중량을 드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데, 근육이 커지며 몸 사이즈까지 바뀌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보통 이런 걱정을 하면 나도 2년 전까진 '나를 봐! 헬스 이만큼이나 해도 몸 안 커졌잖아'라고 말했는데, 여성들의 평균 운동 강도가 점점 올라가며, 이제는 '웬만한 여자는 이만큼 운동을 안 하지'라는 전제를 감히 깔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다룬 무게는 상당히 깜찍했던 것이었다..)
단, 그렇다고 달리기'만' 하는 것은 근육'량'을 늘리는데 효과적이지 않다. 근육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항운동이 필요하고, 보강 운동의 개념으로 중량 운동을 병행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달리기를 추천하지만,
여성에게는 특히나 더 달리기를 추천하고 싶다.
꽤 많은 여성들이 어릴 때부터 차분하고 얌전하게 있도록 교육받았고, 그렇게 충분한 신체활동을 하지 못한 시간들이 누적되어 갈수록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기엔 너무 약해져 버렸다. 어릴 적 충분한 신체활동 기회를 제공받은 남자들도 움직일 일이 없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그 능력이 퇴화해 가는 마당에, 그조차 없었던 여성들의 몸은 질병과 스트레스에 훨씬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생리적 특성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증상들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우리 의지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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